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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사회 413] 안균세 장로의 '로댕의 조각상, "칼레의 시민"에 담긴 이야기'
등록일 2021-02-17 글쓴이 관리자 조회 274

감격사회
감격사회 413호. 발행일 2021.02.17


<로댕의 조각상, "칼레의 시민"에 담긴 이야기>

안균세
장로

유명한 예술가 오귀스트 로댕이 10년간 혼신의 힘을 쏟아 제작한 청동조각상의 이름인 <칼레의 시민>은 도버 해협에 있는 프랑스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스스로 목숨을 내놓아 시민을 구한 용감한 시민들의 자기희생과 관련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몇년 전 “명작스캔들”이라는 한 TV프로그램에 소개된 바도 있는, 흔히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으로 알려진 백년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로 주변사람의 아픔을 함께하고 본인을 희생하는 값진 용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은 어촌인 칼레는 백년전쟁 중인 1347년 영국의 손에 넘어간다.
당시 영국의 국왕은 에드워드 3세로 그는 끝까지 골치를 썩인 칼레시민에 대한 증오 감이 극에 달해 시민을 몰살하려 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이성이 남아있었던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6명을 뽑아 온다면 전체 시민을 대신해 처형하겠다는 것. 이때 칼레시의 지도자들이 모여 그들의 운명을 논하는 절박한 회의를 한다.

그 중 한 사람이 비장하게 말문을 연다.
“여러분, 칼레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민이 죽어간다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이 운명에서 우리를 구한다면 프랑스 국왕도 기뻐할 것입니다. 저는 기꺼이 맨발에 맨머리로 목에 밧줄을 두르고 나가 에드워드3세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제일 먼저 죽음을 각오한 사람은 칼레시의 최고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
침묵이 잠시 흐른 뒤 다음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는 칼레시의 열쇠를 든 법률가 ‘장 데르’. 세 번째 인물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많고 이를 통해 사업에서 큰 돈을 번 ‘피에르 드 위상’. 조각에서 팔을 구부린 인물이 그다.
그리고 우는 시민이란 별명을 가진 ‘앙드리에 당드르’.
다섯 번째는 ‘피에르 드 위상’의 동생인 ‘자크 드 위상’.
마지막으로 ‘장 드 피엥스’.

그래서인지 이 조각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에 의해 알려진 작품이다.
스스로 목숨을 내놓아 시민을 구한 영웅들. 그들 모두 사회적 신분이 높은 분이었다. 이 역사가 일어난 뒤 500여 년이 지난, 1880년대 칼레시장이 로댕에게 작품제작을 의뢰했을 때, 칼레시민은 영웅의 조각을 원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6인의 얼굴은 영웅의 모습이 아니고 하나같이 슬픈 표정을 지닌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마치 포로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그 동안 모든 조각들은 좌대를 높이 만들어 그 위에 조각상을 올려놓아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게끔 제작됐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좌대를 없앴다. 아주 낮은 곳에 임한 6인의 시민이다. 칼레시는 신화를 요구했으나 로댕은 진실을 택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조각상의 사진 앞에 서면, 인간적인 고뇌와 이웃을 위해 조용히 자신을 희생한 이 “칼레의 시민”이야기가 짠하게 가슴을 때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의 이야기를 접할 때, 그 고뇌하는 인간적 면모에 끌린다.
그들도 범부와 다름없이 약점을 지니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주변사람의 아픔을 함께하는 모습에 오히려 더 감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희생하는 용기가 값진 것이다.

‘전설적 오만’의 인물인 샤를 드골의 이야기.
그의 용기와 대담성이 프랑스 역사를 새로 쓰게 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참으로 평범했다. 그의 유서가 백미(白眉)인데, 국장(國葬) NO, 가족 외 장례식 참석 NO, 장송곡 NO, 추도사 NO, 훈장 NO, 드골은 퇴역군인으로서의 연금은 물론,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연금마저 거부했다. “국가를 위한 나의 기여에 대가가 필요 없다”면서. 후일 드골은 자신의 유언에 따라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 안느의 옆에 묻힌다. 그리고 그가 쓴 “전쟁회고록”의 인세 전액을 지적 장애아를 위한 ‘안느 재단’에 기부한다.

수년 전, 신문에 기부 왕으로 소개된, 삼영그룹 창업주 이종환 명예회장의 이야기는 한줄기의 시원한 빗줄기이다. 2002년 개인재산 3천억 원으로 장학재단을 세워 지금까지 자신의 재산 90%가 넘는 8천억 원을 출연했다.
그는 “격렬한 경쟁시대에 돈을 버는데 거칠 수밖에 없었고, 똥 돼지 같이 돈을 벌었다.”고 말하며 “내 인생에도 선악의 양면이 있겠지만 남은 생은 선으로 악을 씻으며 살겠다”고 말함에 고개가 숙여지며, “장학재단을 안 세우고 더 벌어봤자 재벌밖에 더 되겠느냐” 하는 그의 기부철학에 오랜만에 존경의 마음이 간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죽고 사는 길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잘 죽는 길은 잘 사는 길밖에 없고, 잘 사는 길은 잘 죽겠다는 결심밖에 없다 그걸 알면서도 그게 어려워 인생은 방황하며 그래서 인생의 값어치는 천차만별이다.

나는 “칼레의 시민”동상과 드골의 이야기를 떠 올리면서, 우리나라의 곳곳에 세워진 저명한 지도자나 재벌들의 동상들과 전 현직 대통령들의 행적들을 생각해 본다.

요즈음 같은 우울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정치상황과 사회상을 보면서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내로라하는 지도자나 재벌들을 생각하면, 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갈증이 찾아오며 먼 하늘만 바라보게 되는지, 자신도 모르게 가슴만 답답하다.



글쓴이 / 안균세

안균세 장로는 대기업 임원 역임, 중소개인기업을 경영하며 <문학과 의식> 수필등단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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