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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사회 415] 손정일 중국연구원의 '71주년 6.25를 맞으며'
등록일 2021-06-25 글쓴이 관리자 조회 229

감격사회
감격사회 415호. 발행일 2021.06.25

 

71주년 6.25를 맞으며

 

손정일
연세대 중국연구원

중국은 6.25 전쟁을 抗美援朝戰爭(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신생국(1949.10.1.생)인 중화인민공화국(PRC)이 아메리카합중국(USA)을 이긴 전쟁이라고 자랑한다. 미국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염려하여 Korean Conflict라고 부르다가, 이후에는 국내외 사정이 다소 진정되자 그냥 Korean War라고 부른다. 조선에서는 조국해방전쟁(祖國解放戰爭)/조선전쟁(朝鮮戰爭)이라 부르고, 물자공급 참전국이었던 일본에서는 초센센소(朝鮮戰爭), 혹은 초센도란(朝鮮動亂) 등으로 부른다. 6.25사변 혹은 6.25 전쟁을 일컫는 나라들마다의 다른 명칭이 기구하다. 이 기구한 전쟁이 발발하기 1시간 전,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는 제4회 브라질 월드컵 경기 개막전이 있었단다. 지구별의 축제와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던 기막힌 사연만큼이나 한 전쟁 다른 명칭들도 절묘하다. 현재 진행 중인 최장의 전쟁 기간이라는 어이없는 사연만큼이나 이날은 참으로 생각할수록 고약한 기념일이다. 3년이 넘는 동안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트라우마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우리 현대사에 상처를 내고 있다.

그리고 휴전(休戰)이란다. 휴전 이후에 태어났으니 필자는 필시 분단이 낳은 사생아임이 틀림없다. 정전(停戰)도 종전(終戰)도 아니라니, 지금 한반도는 전시(戰時)도 아니고 비전시도 아닐 터, 이 기괴한 상황을 어찌 이해하랴. 155마일(공교롭게도 이는 우리나라 도량형으로 625리에 가깝단다.) 휴전선이 생겼지만, 전쟁은 3년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현실. 분단선 휴전선은 천륜도 끊어놓아 이산가족의 슬픔은 이제 슬픔을 넘어 체념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휴전선 생기기 이전의 38선이란 또 무엔가? 일제 식민지로부터 독립의 기쁨도 잠시, 독립과 함께 그어진 삼팔선(the 38th parallel).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미소(美蘇)가 사이좋게 그어놓은 그 선. 전쟁과 함께 그 38선은 또 다른 분단선 휴전선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인명 피해(남측 126만, 북측 250만여 명 사망 추정) 후 그어진 휴전선. 삼팔선도 휴전선(the cease-fire line)도 외세의 선물로 제공된 분단선(dividing line).

이 분단선이 녹이 슬도록 오래되다 보니 우리네 마음마다 온갖 분단선들이 실타래처럼 꼬이고 엉켜 있다. 분단을 기초로 온갖 갈라치기가 난무한 채, 휴전협정 당사자들의 선의만을 고대하며 보낸 시간이 얼마나 더 오래 계속되어야 하나? 미소 냉전 시대의 산물이었던 삼팔선은 6.25 전쟁으로 무너졌는데, 소련이 해체되고 미중 패권 전쟁 시대의 오늘까지도 휴전선은 여전히 그대로라니. 저 휴전선 철조망을 언제나 걷어내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까? 통일과 평화라는 말이 때론 몽유병 환자의 넋두리처럼 치부되기도 하는 작금 조국의 현실이 참 안타깝다. 70년이 넘은 남북 갈등, 비좁은 한반도의 남남갈등, 철 지난 이념 갈등, 점점 깊어지는 세대 갈등, 게다가 경제적 갈등까지. 한반도에 더 이상 갈등의 풍년가가 아닌 화해의 풍년가가 들려오기를 오늘도 빌고 또 빈다.

어느새 꼰대 반열에 접어든 소년이 초등학교(일명 국민학교) 다닐 때 ― 라떼는 말이야, 그래서 꼰대 소리를 듣겠지만 ― 이 기념일이 되면 운동장에서 조회를 서며 불렀던 6.25 노래란 것이 있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1절이다. 3절까지 있다. 다음은 후렴.)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언제부터인가 이 노래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아직도 남녘의 으르신들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X세대(1965~1980생)들에게는 크게 생소하지 않겠지만, Y세대(1980~1995생, Millennial)와 Z세대(1995~2010생) 이른바 MZ세대들에게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노랫말처럼 느껴질 테다. 어느 시대에나 세대 갈등은 있었고, 그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일 수도 있겠지만. 이대남 세 아들에게 6.25 전쟁을 어떻게 얘기해 줄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이산가족 얘기도 낡은 축음기의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이 이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태어나 보니 휴전선이란 것이 국경선처럼 그어진 나라에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71년 전 6.25 새벽에 개전(開戰)되었다는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며 통일의 필요성 따위를 말하자니 이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 혼돈스럽다. 현실은 현실인데, 우리에게 역사의 당위 따위를 강요하지 말라고 되받아칠 것이 뻔하다. 30여 년 전 국내의 어느 교실에서처럼.

멀리 고려시대 몽골족의 9차례에 걸친 침략이야 차치하고라도, 근래 조선시대 일본의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앞세운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일명 七年戰爭)으로 한반도는 쑥대밭이 된 적이 있다. 불과 30년 만에 이번엔 친명배금(親明排金)을 빌미로 벌어진 정묘년(1627)과 병자년(1636) 2차례의 호란(胡亂, 일명 제1, 2차 滿鮮戰爭)이 우리의 당파성을 더욱 공고히 했나 보다. 급기야 을미사변(1895)과 을사늑약(1905)을 거쳐 경술국치(1910)에 이르러 망국의 설움으로 35년을 보내다가 해방이 되었나 했는데, 38선이라니, 이거이 머선 일인고? 미중의 전쟁터로 변한 한반도가 완전히 폐허가 되도록 싸우더니, 휴전선이 그어지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 계속 진행 중이라니 기가 막힌다. 그래도 신묘막측한 통일 방안들이 해마다 업데이트되며, 남북에는 훌륭한 정치가들도 넘쳐나니 조만간 휴전선이 평화선(peace line)이 되고 DMZ는 남북 MZ세대들의 자유공간이 되는 신선한 뉴스를 듣게 되리라.

내가 좋아하는 가요 중 최고는 아무래도 <가을 편지>다. 2절 마지막 가사 때문이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청년의 심장에 남았던 <아침이슬>[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도 좋고, <상록수>[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와 <작은 연못>[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도 좋지만. 어느 정도 살아오다 보니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라는 노랫말에 더 마음이 간다. 오늘 낭만 닥터 손사부의 애가를 중얼거리며 고약한 6.25 기념일을 맞는다. 이제는 전쟁을 끝내고 남북의 서로 모르는 어린이들이 한 글과 한 말로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그런 한반도를 그래도 꿈꾸며.


 

글쓴이 / 손정일

연세대, 중국연구원
국립대만사범대학 객원교수 역임
전 연변과기대, 키르기스스탄 케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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