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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사회 422] 김정남 고문의 '고구마'
등록일 2021-08-04 글쓴이 관리자 조회 74

감격사회
감격사회 422호. 발행일 2021.08.04

 

고구마

김정남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고구마는 공식적으로는 1763년 통신사 조엄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고구마가 구황식물로 이 땅에 자리잡기까지는 실로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노력이 있었다. 이 식물이 전국으로 전파되기까지는 실로 3백여년이 걸렸다. 고구마 재배서인 『종저방(種藷方)』에 의하면 조선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16세기, 선조 때였고 비변사에서 보급에 노력한 것은 1633년의 일이었다. 남해안의 어부들이 풍랑에 표류해 일본이나 대마도에 도착해서 고구마가 재배되는 것을 보고 돌아와 고구마가 구황작물로 적당하다고 보고했다는 기록이 현종실록에 남아있다.

18세기, 이광려(1720~1763)라는 선비가 고구마야말로 백성의 배고픔을 구할 수 있는 식물이라고 확신하고, 중국이나 일본에 가는 사신이나 역관에게 고구마 종자를 구해올 것을 부탁했다. 일본에 가는 통신사 조엄에게도 부탁, 1763년 가까스로 고구마 한 포기를 구해서 집에서 시험 재배했으나 실패했다. 동래부사 강필리에게 부탁해서 심은 것도 역시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 감명을 받은 강필리(1713~?)가 역시 통신사 조엄을 통해 몇 포기를 구해 동래에서 시험 재배한 것이 마침내 성공했다. 시험 재배에 성공한 강필리는 1766년 고구마 재배법을 담은 『감저보(甘藷譜)』라는 책을 발간한다. 이렇게 해서 남해안에서 고구마 재배가 시작되었다.

중부 지방에 고구마를 재배할 수 있게 한 것은 김장순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라도 보성에서 9년 동안이나 고구마 재배를 연구한 신종한이라는 사람을 만나 경기에서 시험 재배를 시작하여 마침내 성공한다. 그리하여 1813년(순조11년) 자신의 재배 경험과 신종한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담은 『감저신보』라는 책을 펴내기에 이르렀고, 이로부터 중부 지방에서도 고구마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또, 실학을 하는 서경창이라는 사람은 지위도 땅도 갖지 못한 가난한 양반이었지만, 조선의 식량 문제 해결을 최대의 과제로 삼아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 그는 종래의 고구마 재배와 관련한 여러가지 학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했다. 고구마의 파종 시기, 씨 고구마의 소요량, 줄기의 선택과 심는 시기, 그리고 착생 부위 등에 관한 연구서, 『종저보(種藷譜)』를 지었다. 전라도 관찰사로 재직 시에는 고구마 재배농가에서 씨 고구마를 구하여 모든 고을에서 이를 재배토록 하니, 이제 고구마는 남쪽 거의 모든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의 결과 1900년초 고구마는 이제 전국적인 작물이 되었다. 이처럼 고구마에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기아에서 구하고자 했던 숱한 선인(先人)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 본 기고문은 월드코리안신문(http://www.worldkorean.net)에 투고하는 [아! 대한민국]칼럼으로 계속 연재하여 드립니다.  
 

글쓴이 / 김정남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월드코리안신문 상임고문
전 (사)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
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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