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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사회 247] 김종영 편집장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으며'
등록일 2017-11-27 글쓴이 관리자 조회 1371

감격사회 247. 2017. 11. 27.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으며
- 인간사에서 가장 큰 슬픔은 무엇인가?

사람의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 인간사(人間事)에서 가장 큰 슬픔은 무엇인가? 아마 ‘죽음, 사람의 죽음’일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류와 생명의 역사에서 죽음의 문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완벽하게 풀지 못한 난제(難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담대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대개 정신 수양을 많이 한 종교인이다. 또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거나 포기한 일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 책 등 일상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2005년 많은 인기를 누렸던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은 최진실의 암 투병 연기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특히 중장년층 시청자가 지지를 많이 보냈다. 최진실의 극중 역할도 한 몫을 한 것이겠지만, 중장년은 죽음을 무작정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나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가장 큰 슬픔 죽음, ‘천붕(天崩)’과 ‘참척(慘慽)’
박완서(朴婉緖, 1931.10.20~2011.1.22)가 쓴 소설 『한 말씀만 하소서』는 ‘일기(日記)’형식으로 아들을 잃은 아픔, 죽음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작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묻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문득 작품 일부를 읽으면서 인간사회와 죽음, 그리고 그 속에서 정화의 결정(結晶)을 생각하는 기회를 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부모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자식의 슬픔인 ‘천붕(天崩)’과 달리 자식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참혹한 슬픔’, 즉 ‘참척(慘慽)’을 다룬 작품이다. 이 점에서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작가 박완서의 참척’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다.
박완서는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사별하고 가톨릭에 귀의했다. 특히 아들을 잃고 박완서는 납득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고통 앞에서 참담함과 절망이 가득 찬 심정을 신(神)을 향한 저주로 풀어간다. 하지만 작품의 끝에 이르면 한 개인이 아닌 한 인간의 입장에서 죽음을 보는 인식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 등 깊은 성찰에 올라 있음을 보여준다. 아들을 잃은 어미의 비통함을 기록한 것에 끝나지 않고 이를 계기로 삶과 죽음, 그리고 신의 문제에 이르는 일련의 성찰이 드러나게 된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무엇인가?
『한 말씀만 하소서』는 한 없이 슬픈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작가의 아픔과 고통에 동정과 연민,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되지만 읽어갈수록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함께 한숨만 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슬픔과 고통 자체가 아니라 생명과 존재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94년 『한 말씀만 하소서』와 같은 해에 발간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시인 김현승의 「눈물」에서 제목을 따온 작품이다. 눈물, 죽음, 그리고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하나로 묶으면 ‘가장 나중에 갖고 있는 것’은 결국 ‘죽음’을 비유와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홀로서기는 혼자가 아니기에 가능하다
박완서의 작품 세계는 막힘없는 유려한 문체와 일상과 인간에 대한 중년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을 결합해 빛을 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생한 현실 표현, 치밀한 심리묘사, 능청스러운 익살, 삶에 대한 애착, 핏줄에 대한 애정, 일상에 대한 뛰어난 묘사가 박완서를 읽는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의 성숙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指標)다.
박완서가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역설적인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라며 홀로서기는 혼자가 아니기에 가능했다는 표현은 어쩌면 그의 작품과 그의 삶을 닮고 담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이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에 있는 주요 문장을 읽으며 인간사의 가장 큰 슬픔인 죽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 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나는 아들을 잃었다. 그 애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아듣는 걸 견딜 수가 없다. 그 애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증거는 이제 순전히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밖에 없다. 만약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그러나 곧 아들의 기억이 지워진 내 존재의 무의미성에 진저리를 친다. 자아(自我)란 곧 기억인 것을. 나는 아들을 잃고도 나는 잃고 싶지 않은 내 명료한 의식에 놀란다. 고통을 살아야 할 까닭으로 삼아서라도 질기게 살아가게 될 내 앞으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늙은인 싫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받은 벌은 내 그런 교만의 대가였을까.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니 나는 엄중하지만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나는 내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무서운 사실을 견디기 위해서 왜 그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영문을 알아야만 했다. 아들을 잃은 것과 동시에 내 교만도 무너졌다. 재기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그러나 교만이 꺾인 자리는 겸손이 아니라 황폐였다. 내 죄목이 뭔지 알아냈다고 생각하자 조금 가라앉은 듯 하던 마음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다시금 맹렬한 포악이 치밀었다. 신은 죽여도 죽여도 가장 큰 문젯거리로 되살아난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殺意),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암 있어야 하구말구.”

“역설적인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를 염려해준 여러 고마운 분들을 비롯해서 착한 딸과 사위들, 사랑스러운 손자들 덕분이다. 나만이 알고 느끼는 크나큰 도움이 또 있다.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설사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요즈음 들어 어렴풋하고도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도 느끼게 됐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글쓴이 / 김종영

1971년 단오(음력 5월 5일)에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신문)을 공부했다. 1996년부터 신문사, 출판사, 잡지사에서 글을 쓰는 일을 했다. 2014년 7월 사람과 사회를 담는 잘 빚은 항아리를 지향하는 인터넷신문 『사람과사회』를 설립,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 2017년 3월 봄호부터 ‘계간 사람과사회’도 발행하고 있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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