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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사회 253] 전수미 변호사의 '한반도 민족자결권 행사와 통일'
등록일 2017-12-28 글쓴이 관리자 조회 1421

감격사회 253호. 2017. 12. 28.         

한반도 민족자결권 행사와 통일

미국과 북한의 강대강 대치 속에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위기는 호기라고 한반도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준비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어느 형태로든 다가오는 통일 열차가 플랫폼에 멈췄을 때, 한국의 통일을 위한 북한개입의 정당화 작업은 필요하다 할 것인데, 일반적으로 한국 학자들이 주장하는 한국주도의 통일과 북한개입은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국제법상 '민족자결권(right of peoples self-determination)’에 근거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에 따른 영토조항과, 한민족에 근거한 ‘민족자결권’논리는 정서적 부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국제사회가 그 논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 또한 존재한다. 북한은 국제법상 이미 국가로 인정받고 있고, 한국 헌법이 중국을 비롯한 타국에 규범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전체로서의 독일(Deutschland als Ganzes)’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통일과 개입의 정당성을 도출하였는바, 여기에서 ‘전체로서의 독일’의 개념은 1990년 9월 독일문제의 최종결정에 관한 조약(Zwei-plus-Vier-Vertrag)의 “베를린과 전체로서의 독일에 대해서는 2차 대전 전승 4대국의 권리와 책임, 특히 전쟁중과 전쟁 후 이루어진 4대 전승국 관련 제 협정 및 결정에 유의하며....”라 명시한 전문에서 나온다. 한국이 주장할 수 있는 민족자결권을 독일식의 ‘전체로서의 한국(Korea as a whole)’에서 보자면, 언제부터를 ‘전체’로서의 한국으로 기점을 잡아야 하는지가 문제된다. 이를 건국절로 해야 하는지, 상해임시정부로 해야 할지, 아니면 대한제국을 선포한 날 등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전체로서의 한국’의 기점을 파악하기 위해 1948년 제헌헌법부터 나타난 대한민국 건립에 대한 명문을 분석해보면, 먼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는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이라고 명시를 하고 있고, 1960년 민주화항쟁에 따른 군부정권 교체 및 자유선거가 실시 된 이후 개정된 1963년 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 의거와 5.16 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을, 현행헌법인 1987년 10월 개정된 제 8차 개정헌법에서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여 3.1운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설되었으며 이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적 정통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결국 현행 헌법 체제를 기준으로 한다면 ‘전체로서의 한국’의 기점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년 4월 13일로 할 수 있으며, 그 당시 영토를 기준으로 통일의 지향점과 주체를 한반도 전체와 남북한 주민들로 상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전체로서의 한국’의 기산점과 기준에 대한 반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체로서‘남·북한 특수관계론’에 근거하여 개입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 판례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 명시한 ‘남과 북의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명문을 근거로 한다. 이러한 헌법 제3조와 제4조에 근거한 ‘남·북한 특수관계론’은 서로 상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남북교류협정에 관한 법률’과 ‘국가보안법’을 공존하게 하였다. 즉 남북한이 평화롭게 교류할 때에는 ‘남북교류협정에 따른 법률’에 근거하여 관계를 이어가고 북한이 남한의 체제를 부인하고 무력침략을 하려 할 시에는 ‘적’으로 간주되어 ‘국가보안법’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자결권을 ‘외부의 간섭 없이 자유로이 민족 스스로의 정치적 지위를 결정하고 그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라고 정의한다면, 동독은 급변 발발 직후 1990년 동독의회가 서독으로의 편입을 결정하는 의결 과정을 통해 동독이 체제전환을 할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을 스스로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동독주민의 이러한 ‘민족자결권’의 행사는 강력한 규범력을 가진다 할 것이고, 민족자결권은 국제법의‘강행규정’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이러한 동서독 통일과정을 부인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동독의 사례를 비추어본다면, 한반도‘민족자결권’의 주체는‘북한주민’이 될 수 있다. 북한 유사시 북한주민이 한민족의‘민족자결권’을 행사하여 대한민국으로서 편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 속에 통일이 진행된다면, 한국의 북한영토에 대한 관할권 주장과 함께 단독개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물론 한국이 한민족이라는 이름아래 자체개입을 논할 수 있으나, 현재 전시작전권은 한미연합사의 연합사령관에게 이양되어 있고, 미군의 공동개입 조건이‘외부의 공격’이 있을 때를 전제로 하는 만큼 한미연합군은 물리적인 전시상태이면서 동시에 북한주민의 의결권 행사나 초청이 있을 시 개입이 가능하다 할 것이다.

 




글쓴이 / 전수미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한중법학회 상임이사
북방법연구회 상임이사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특별위원회 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통일법제특별위원회 위원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법률지원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우수변호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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