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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사회 254] 김도 부총재의 '백두산'
등록일 2018-01-02 글쓴이 관리자 조회 1525

감격사회 254호. 2018. 1. 2.         

백두산

우리에겐 단순히 천지(天池)의 신비로움이나 풍경의 아름다움, 그 웅장한 산의 스펙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산! 우리 민족에게는 백두산이 또 하나의 높은 산 이름이 아니라 배달겨레의 가슴 가슴에 아로새겨진 민족의 영산(靈山),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신비(神秘)의 산이 백두산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 백두산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단군신화와 함께 민족의 성산(聖山), 신산(神山)으로 숭앙(崇仰)되었으며 오랜 세월동안 전설과 신화가 돼 우리와 함께했다.

오랫동안 별러온 백두산 등정! 나는 중국 쪽 백두산이 아닌 북한 개마고원을 경유하는 백두산 등정코스가 열리길 기대하면서 몇 번의 기회를 미루어 왔다. 북핵 위기를 비롯한 남북긴장은 갈수록 고조되고 내 나이도 70이 되고 보니 초조해 지기도 했다. 살아생전 꼭 가봐야 할 백두산엘 지난 8월에야 가게 됐다.

백두산의 명칭은 수천 년 전부터 불함산-단단대령-개마대산-도태산-태백산(太伯山)-백두산(白頭山, 중국은 長白山이라함)으로 바뀌어 왔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땅이었다가 발해국의 중심이었던 백두산 일대가 고려시대 이후 만주족 국가들과 국경을 이루기 시작했다.

고려 초인 946년 어느 날 백두산이 대 폭발하여 그 화산재가 1100km 떨어진 곳까지 날라 갔다고 한다. 이 폭발로 발해국이 사라지고 그 유적도 메몰 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668년, 1702년에 화산이 분출된 기록이 있으나 대 폭발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712년에 숙종은 백두산정계비를 세우고 청(淸)과 국경협상을 마무리했으며 1909년엔 청일 간에 간도협약이란 이름으로 간도일대가 청의 영토가 되고 두만강이 조(朝), 청(淸) 국경이 되는 통한(痛恨)의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

백두산 탐사나 등산기록은 1764년 실학파 선비 박 종이 쓴 백두산 유산록과 1926년 최남선이 쓴 백두산근참기가 있다. 그 이후 많은 학자, 탐험가, 등산가들이 백두산 등산의 감격을 글과 책으로 남겼다.

1980년에는 중국과 북한이 국제생물권보호구로 지정하여 내가 다녀온 길림성 쪽에서는 비교적 엄격히 보호,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2750m높이의 백두산은 그 천연(天然)의 웅장함, 한대 원시림(寒帶 原始林)의 울창함과 더불어 천지(天池)라는 산 정상의 대형 호수가 있는 지구 유일한 화산(火山)이다. 천지 수면의 고도는 2155m이고 저수량이 20억톤, 빗물70, 지하 용출수 30%로 담수된 천지는 압록, 송화, 두만강의 시원(始原)을 이룬 호수이다.

길림성에서 접근하는 백두산은 해발 5~600m지점에서 자동차로 시작하여 2~30km를 완만하게 올라가 해발 1500m 지점에서 협곡탐사를 한 다음 다시 자동차로 해발 2000m까지 20여km 급경사를 올라가서 거기로부터 마지막 500m 높이를 약 4시간 걸쳐 등산하게 돼 있었다.

50km정도를 아주 완만하게 올라가기에 고도를 느낄 수가 없었으나 수목의 변화나 기상의 돌변 등으로 고지대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올라본 산 중에 가장 높은 백두산 2500m 능선에서 300m아래 천지를 감상하니 실로 장관이었다. 첫 등정의 감격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연중 6~9월 4개월 동안만 개방한다는 백두산은 맑은 하늘아래 정상부와 천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날씨는 연중 30일도 되지 않아 3대(代)가 적선해야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

아니나 다를까 정상(頂上)의 기상상태는 먹구름과 비바람이 지나가는 사이에 천지를 관찰하고 사진 한 컷 촬영하기도 어려웠다. 주말이라 중국인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 다시 맑은 하늘아래 시원한 천지를 바라볼 수 있을까!

정상 부근에서 북한 땅을 거쳐서 올라간 전망대에서 천지를 바라봐야하는 현실에 가슴이 저며 옴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죽기 전 통일된 북녘 땅 개마고원을 거처 백두산에 올라 천지에 손, 발을 담가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는지. 그 유명한 남이(南怡) 장군의 시 북정가(北征歌)로 백두산을 등정한 초보자의 감동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白頭山石 磨刀盡(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 飮馬無(두만강 물은 말에 먹여 말리라)
男兒二十 未平國(사나이 이십세에 나라평정 못하면)
後世誰稱 大丈夫 (뒷날 그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오!)

 
※ 본 기고문은 월드코리안신문에 투고하는 [선비촌만필] 칼럼으로 향후 계속 연재하여 드립니다.  
 




글쓴이 / 김도

전 청와대 총무, 정무비서관
현 한민족 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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