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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사회 314] 허남정 회장의 '민간외교관 허남정의 일본 종단기 (4)'
등록일 2019-05-17 글쓴이 관리자 조회 1465

감격사회
감격사회 314호. 발행일 2019.05.17


민간외교관 허남정의 일본 종단기 (4)

허남정
에스포유 회장

허남정 에스포유 회장은 한일 관계 개선을 기원하며 4월 1일부터 61일 간 일본 열도 종단에 나섰습니다. 1500㎞ 구간을 직접 걸으며 현지인과 소통하고, 한일 우호증진을 기대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한국경제신문에 기고되고 있는 허남정 회장의 종단기를 연재해드리겠습니다.

와카야마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국도변에 쳐 놓은 천막 아래 몇 가지 농산물이 놓여 있고 노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그분들의 추천대로 국도가 아닌 옛길로 코스를 바꾸었다.

이 길은 에도시대 다이묘(지방영주)일행이 참근교대를 위해 에도(지금의 도쿄)로 갈 때 이용한 길이다. 에도 막부 시절 다이묘들은 1년 기준으로 장군이 있는 에도와 자기 영지를 오가며 근무했다.

에도를 떠날 경우에는 자신의 정실과 뒤를 이을 아들을 남겨두어야 했다. 영지에서 에도를 오가는 데 드는 여행경비는 물론 에도에 머무르는 동안 드는 비용 또한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이것은 지방 정부로서는 막대한 재정부담이었고 에도에 남은 가족은 인질이 되었다. 이 제도로 막부의 중앙집권적 권력은 강화되었고 지방 영주가 대립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에도막부는 260년을 존속했다.

오늘은 29킬로를 걸었다. 역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소개받았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소개받은 라면집으로 가는데 한국어가 병기된 교회 간판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교회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내일은 오랜만에 교회에 가야겠다.

다음날 11시 부활절 예배에 참석했다. 특별한 날이라 교토에서 초청한 목사님이 설교를 했다. 예배가 막 끝나려는데 교회 건물이 '쿵! '하며 크게 흔들렸다. 여기 와서 처음 겪는 지진이다.

목사님이 나를 교인들에게 소개했고 일어나서 몇 마디 인사를 했다. 일본 교회는 대부분 신자 규모가 적다. 예배 후에 점심을 함께 하는 친교회 분위기가 가족적이었다.

여행객인 나를 위해 목사님이 문씨 성의 여성 집사님을 소개해주었다. 그녀가 저녁에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 이십 여일이 지나 김치가 그리웠던 참이라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저녁식사까지는 시간이 있어 와카야마역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아 언론사에 보낼 여행기를 정리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아주머니들과 오늘 경험한 지진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오늘 지진이 비록 3도로 경미했지만 지진은 늘 두려워요. 대형 지진의 전조일 수도 있으니까요." 큰 지진으로 쓰나미가 오면 최소한 5층 이상 높이의 건물로 올라가야 살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저녁에 집사님과 인근의 '만득이네'에서 식사를 했다. 그녀는 돼지갈비에다 부침개 순두부 백반 등을 잔뜩 주문했다. 원 없이 한국 음식을 먹었다. 오늘은 가게가 쉬는 날인데도 나를 위해 식당 주인인 권사님이 문을 열었다.

생면부지의 나그네에게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따뜻하게 대접을 해준 것이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인근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불렀다. 집사님 노래 솜씨를 보니 오랜 내공이 묻어난다.

헤어질 때 문 집사님은 내일 아침 식사라며 편의점에서 산 오니기리(주먹밥)를 내게 건네주었다. 와카야마는 생각보다 낙후된 지역이다. 우리 교민들이 많으며 한국인 교회도 몇 군데 있다 한다. 걸어가다 보니 한국식당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다음날에는 열차로 그리고 일부 구간은 걸어서 온천 리조트 인 시라하마로 갔다. 같은 와카야마현이지만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이국적이다. 힘들게 시라하마역에 도착했는데 버스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마을이 중심지역이란다.

역의 관광안내센터에 가니 마스크를 쓴 여직원의 말투가 퉁명스럽다. 숙소에 관해 상의를 하려고 하자 오늘 업무시간이 종료됐다며 여관 조합의 전화번호가 인쇄된 광고지를 준다.

피곤해서 조합에서 소개받은 몇 군데 여관 중 첫 집으로 예약을 했다. 그녀에게 "당신 덕분에 방을 잡았다. 당신은 참 친절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계면쩍어하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자기는 대도시 오사카 출신이라며 목에 힘을 준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다가와" 17번째의 '마부유'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내려서는 바닷 쪽이 아니라 언덕으로 100미터를 올라가면 우측에 여관이 보일 것이다. 버스 요금은 400엔이고 내릴 때 내면 된다"라며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고 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방 한가운데 고다쓰가 놓인 정갈한 일본의 전통 여관방이다. 대욕탕은 아니지만 중규모의 온천탕이 방 앞에 있다. 손을 넣어보니 물이 미끈거린다. 옛날 일왕들이 힐링과 치유를 위해 왔을 정도로 일급수를 자랑하는 온천이다.

40대의 여주인이 드물게 보는 미인이다. 칭찬을 하니 "거리에 나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얼굴이에요"라면서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아침에 나갈 때 기념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니 흔쾌하게 승낙했다. 아쉽게도 다음날 일찍 출발하느라 사진 찍지 못했다.

다음 지역은 구마노다. 오늘은 먼저 걷고 열차를 타기로 했다. 바다를 우측으로 바라보며 걸었다. 어제 와카야마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나 아름다운 망망대해가 무섭게 느껴진다. 쓰나미가 왔을 때의 피난 장소가 쓰인 표지판이 연이어 보인다.

수많은 터널을 통과했다. 첩첩산중을 걸었다.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차만 간간히 지나간다. 걷고 또 걸었다. 외로움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윽고 저 멀리 바다가 보이며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아! 살았다." 오늘은 25킬로를 걸었다.

가게에 들러 늦은 점심으로 허겁지겁 빵을 먹었다. 레드와인을 한 잔 마시니 조금 마음이 안정된다. 더 이상 못 걷겠다. 그런데 아까 역무원에게 얻은 열차 시간표를 보니 히키가와역에서는 2시간 뒤에나 기차가 있다.

그다음 정거장은 조금 규모가 있는지 30여분 뒤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다. 가게 주인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역으로 달렸다. 거금 3,000엔을 택시비로 썼다. 이번에 와서 처음 타는 택시다. 신구라는 역에서 환승을 위해 내렸다.

환승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센터로 갔다. 구마노시역 인근의 숙소 문제를 상의하자 현이 달라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 구마노시는 미에현이고 이곳은 와카야마 현이란다.

그녀가 알려준 구마노시역 관광센터로 전화를 하니 자기들은 7시까지 근무하니 걱정 말고 오라고 했다. 30분 거리라 6시 전에는 도착하겠다.

이곳 센터 여직원이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너무 좋아하며 명함을 준다. 20년 전 한국의 김천 인근의 한센병 환자 마을에서 한국 대학생과 봉사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6개월째 공영방송에서 하는 한국어 강좌를 듣고 있다 했다. 식민지 시절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한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단 내 배낭을 보고 감격하여 떠나는 나를 향해 오래오래 손을 흔들었다.

구마노에서는 적당한 게스트 하우스가 없어 역 근처의 비즈니스 호텔을 잡았다. 구마노에는 스페인 산티아고처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200년 된 불교 성지 참배길(구마고도)이 있다.

빗속에 판초 우의를 쓰고 인근에 있는 세계 문화유산 사자바위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인 '하나노 이와야'를 둘러보았다. 이제 이세 신궁이 있는 이세시를 향해 출발이다.

걸어가는데 사람과 자전거는 통행이 불가능한 자동차 전용 고가도로가 나타난다. 우회길로 들어섰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한참을 가도 안내표지가 안 보인다. 산길로 들어선다. 이건 아니다 싶어 되돌아 나왔다.

인근 바닷가 마을 오오도마리로 들어가 동네 주민에게 길을 물었다. 산길이 험한 데다 거리가 멀어 오와세까지 걸어가면 한밤중이 된다며 극구 말린다.

근처의 오오도마리역으로 갔다. 무인역인데 다음 열차가 오려면 아직 1시간 반이나 남았다. 아예 신발 양말을 다 벗고 미숫가루를 더운물에 타서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열차 안에서 옆에 앉은 마쓰모토라는 중년 부인과 얘기를 나누다. 남편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오와세의 병원에 입원해 있다. 매일 병원으로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인데 이제는 남편의 상태도 많이 안정되었다고 했다.

남편도 그녀도 이제껏 해외에 나가 본 일이 없다. 언젠가는 북유럽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97세 된 친정어머니를 언니와 교대로 보살피고 있다고 해서 내가 효녀라고 칭찬해주었다.

그동안 부모님이 길러주시고 보살펴주셨는데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그녀는 반문했다. 자식을 길러 결혼시키고 이제 좀 편하게 살겠구나 생각했는데 쓰러진 남편 병수발에다 연로한 친정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 그러다 간다. 이것이 인생인가.

다음 역에서 그녀가 내렸다. 기차가 떠날 때까지 홈에 서 있었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자 나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자기 얘기를 들어준 내가 고마워 그랬나 그녀가 눈물을 보였다. 남편이 하루속히 회복되고 그녀가 여생을 행복하게 살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다음 방문 지역 이세시는 일본 왕실의 조상신을 모신 이세 신궁이 있는 곳이다. 년간 참배객이 6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달 말로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일전에 퇴위 신고를 하러 왔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주로 일본인들이 찾는 곳이라 외국인 관광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역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받아 짐을 두고 버스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내궁으로 갔다. 외궁은 역 근처에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이세 신궁을 둘러보았다. 숲이 울창한 산으로 둘러쌓인 고즈넉한 분위기다. 규모가 거대하며 아름드리나무에서 역사가 느껴진다. 왠지 엄숙해진다. 일본 조상신에게 한일 양국의 우호증진을 기원했다.

비가 많이 내린다. 센또에 다녀왔더니 여기서 봉사하는 여성 마사미가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또 다른 투숙객인 히로시마에서 온 시즈코도 함께 가서 즐겁게 저녁식사를 했다. 이곳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 총각이 경영하는 이자카야였다. 1인당 500엔씩 더치페이했다.

내일은 오랜만에 대도시인 오사카로 간다. 출판사 신 대표가 나를 격려하러 이곳으로 온다. 숙소도 그가 특급호텔을 스폰서 했다. 덕분에 내일은 숙소 걱정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오사카를 두 정거장을 남겨두고 야마토야기에서 내렸다. 나는 이곳을 오사카 지역으로 착각했다. 한 일본인 승객이 "야마토란 이름이 붙으면 다 나라현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야마토란 나라 왕국의 옛 지명이다.

오사카 경계까지 30여 킬로나 남아있어 호류지(법륭사)역에서 전철을 타기로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호류지는 고구려 담징이 그린 벽화가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진 곳이다.

역 앞 잔디 위에서 여고생 두 명이 무언가를 먹고 있다. 사진을 부탁하니 총알같이 달려온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한국 너무 좋아해요. BTS 좋아요!!!"라고 했다. 교복을 입고 있어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전철에서 만난 어느 30대 여성도 한국이 좋다며 이번 황금연휴 때 친구와 서울에 간다고 한다. 가는 목적을 물으니 "첫째 미용, 둘째 쇼핑, 셋째는 맛있는 음식"이라며 한국을 '미용 천국'이라 불렀다.

서울에서 온 출판사 신수근 대표와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이곳은 오사카 최고의 환락가다. 관광유람선이 다니는 운하도 있다.

이곳은 오사카가 근거지인 '한신 타이거즈'가 우승하면 젊은이들이 물로 풍덩 뛰어내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새 일왕의 등극을 전후한 10일간의 황금연휴라 인산인해다.

'굴뚝 없는 산업' 관광에 아베 정권이 공을 들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가 우리를 크게 앞질렀다. 작년에 3,0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는 3,500만 명을 예상하고 있다. 내년 7월에는 도쿄올림픽도 열린다.

오전에는 교토역 근처의 PHP연구소에 들렀다. 오에 부장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직원들과 기념촬영도 했다. 마쓰시다 코노스케 기념관을 둘러본 다음 식사를 대접받고 다음 방문지 후쿠이현의 지인도 소개받았다.

이 연구소는 파나소닉의 창업주 마쓰시타 코노스케가 1946년에 설립했다. 기업의 번영으로 세상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자는 대국민 캠페인의 모체가 되었으며 출판사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나는 20여 년 전에 마쓰시타의 경영철학에 관심을 가진 국내중소기업인들과 한일PHP경영연구회를 결성했다. 지금은 한국PHP동우회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마쓰시다는 파나소닉을 당대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켰으며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고 있다.

만년에 그는 사재를 털어 '마쓰시타 정경숙'을 만들어 일본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양성에 힘을 쏟았다. 총리 국회의원 등 수십여 명의 정치인도 배출했다. 그리고 연구소의 대정부 제안은 일본 정부도 무겁게 받아들여 이를 정책에 반영해 왔다.

시내 지도를 얻으려고 교토역 관광센터에 들렀다. 내가 걸어서 은각사로 간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직선거리로도 7킬로가 넘는다며 역 앞에서 100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8킬로를 걸었는데 신호등이 많아 2시간이나 걸렸다.

은각사 입구에서 신 대표를 만났다. 더위에 걷느라 목이 말라 가게에서 생맥주를 시켰다. 안주로 얇은 햄소시지 두 쪽이 나왔는데 그것으로는 모자라 배낭에서 주섬주섬 과자를 꺼냈다. 그러자 여주인이 얼른 달려오더니 안 된다고 손을 흔든다. 순간 머쓱했다.

철학의 길로 들어섰다. 교토대학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이 길이 기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에 명문 교토대학이 있다. 10여 년 전 11월 이곳에 처음 와서 붉은 단풍의 장관에 감탄한 적이 있다. 늦은 벚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는 4월의 철학의 길은 고즈넉했다. 이 또한 좋았다.

흥복사 앞의 '다경'이라는 작은 선술집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신 대표의 단골집이었는데 주인은 60대 중반의 한국인 아주머니다. 최근 5-6년 일본에 오지 않아 혹시 문을 닫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문을 연지 15년이 되었는데 단골이 많아 거의 매일 빈자리가 없다고 했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서 그 아이템 번호를 자기 전표에 직접 기록하게 하고 나중에 계산도 스스로 한다.

그녀가 모토로 삼은 정직은 신용을 확립했고 수많은 단골이 생겼다. 그녀는 손이 컸다. 비싼 김치를 얼마든지 추가로 주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음식도 푸짐하게 주고 술도 잔이 넘치게 부어주었다.

4대가 오는 단골도 있다고 했다. 이른 시간인데 옆자리에 한국의 짜파게티를 맛있게 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70대 여성이 있다. 오사카에서 기차를 타고 매월 1-2회 오는 단골이라 한다. 음식보다 그녀의 푸근한 마음이 그리워서 오는 것 같다.

혹시 못 오는 달에는 정성껏 쓴 안부 편지를 보내온다고 한다. 여주인이 최근에 온 편지를 보여 주었다. 글씨를 보니 공직에 있다 은퇴한 사람 같다. 달필이었다. 옆에서 신 대표가 양해를 구하고 편지를 사진에 담았다.

이 여성은 올 때마다 자택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종류별로 가져오기도 하고 서서 일하는 그녀를 위해 파스를 박스채 사오기도 한다. 물론 여주인도 뒤질세라 그녀에게 김치 등을 잔뜩 들려 보낸다.

그 여성은 먼저 일어서면서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나를 격려하고 싶다고 여주인에게 정종 두 잔 값을 선불했다. 그러자 여주인은 선불로 받은 돈의 갑절이 넘는 비싼 고급 가고시마 소주를 가득 부어주었다.

일본에서는 신용만 잘 지키면 살기가 편한 곳이다. 그리고 일본인은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여주인의 경영전략을 들어보니 신용은 기본이고 첫째 스피드 둘째 맛 셋째는 서비스라고 했다. 혼자서 하는 장사라 손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손님 앞 탁자 아예 다 비치를 해 놓았다. 손님이 그녀에게 음식이나 술 주문 외에는 아예 다른 요구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놓았다.

항상 뜨거운 물을 끓여두고 있어 손님이 라면을 시키면 스피드하게 만들 수 있다. 배고파 식당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스피드한 음식 제공이 최고의 서비스라고 그녀는 말했다.

신 대표의 권유도 있어 토요일에는 1박 2일로 일본 불교의 성지 고야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오사카는 상업도시라 이렇다 할 관광거리가 없다. 오사카성 정도다.

토요일 난카이철도 난바역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고야산으로 향했다. 특급열차가 최근에 생겨 이제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종점인 극락교역에 내리니 추위로 몸이 움츠려든다. 해발 800고지 산악지대라 평지와 온도차가 크다. 오리털 재킷으로 무장했는데도 으스스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고야산역까지 가는 동안 중년부부와 얘기를 나눴다. 내가 일본 열도를 종단하고 있다는 얘기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안내센터로 가서 숙소 문제를 상담했다. 직원이 여기저기 전화기를 돌렸지만 빈 방이 없다. 황금연휴 기간이다. 십여 차례 시도 끝에 겨우 빈방이 있는 여관을 찾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박에 게스트하우스의 2배나 하는 7,000엔이지만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추워서 여관까지 버스를 탔다. 여관 주인은 내일 아침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올 것 같다고 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우선 몸을 녹였다. 주인이 컵라면을 하나 준비해 놓았다. 주변에는 식당도 편의점도 없고 칠흑같이 어두운 산속이다. 지옥에서 부모님을 만난 듯 컵라면이 반갑다.

체크인할 때 몇 시에 아침식사를 할 것이냐 묻길래 7시 30분이라고 했다. 방으로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아침에 출발 준비를 마치고 시계를 보고 있는데 정확하게 그 시간에 문을 두드린다.

아침은 갓 구운 토스트 두 쪽 크로와상 한 개 계란 반숙에 오렌지잼 버터 그리고 커피다. 여느 특급호텔 못지않은 훌륭한 아침식사 메뉴다. 계란 반숙이 적당하게 익어 먹기에 좋았으며 성의가 담겨 있었다.

여관을 나서면서 오리털 재킷 밑으로 옷을 몇 개나 겹쳐 입었다. 여름바지라 아랫도리는 여전히 썰렁하다. 오쿠노인으로 향했다. 이곳은 중세 전국시대의 영웅들 근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명인사들의 무덤 약 20 만기가 있는 곳이다.

울창한 삼나무 숲 속에 자리한 거대한 공동묘지다. 기업들이 사원들을 위해 마련한 기업 묘소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사원들에 대한 최고의 복지이며 회사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는 훌륭한 제도이다.

이곳은 불교 진언종을 개창하고 고야산 성지의 토대를 만든 고보대사 구카이가 묻힌 곳이다. 이곳에 묘를 쓰면 고보대사의 음덕으로 극락왕생한다는 믿음이 있어 이곳은 일본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먼저 우리에게 너무나도 그 이름이 익숙하지만 악연인 히데요시의 묘에 가보았다. 그의 가족들도 함께 묻혀 있다. 미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명석한 두뇌와 재능 그리고 주군 노부나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 그의 필살기였다.

결국 노부나가가 닦은 기초 위에서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일본을 통일하며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히데요시는 일본에서 세속적 출세의 전형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렇지만 말년에 중국 그리고 인도까지 통일하겠다는 망상에 사로 잡혀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의 가족묘는 10평도 채 되지 않는 넓이다. 살아서 그렇게도 영화를 누렸지만 인간은 죽고 나면 그만이다. 죽은 사자는 살아 있는 한 마리 토끼보다 못하다. 그의 산소는 찾는 이도 별로 없고 온갖 잡풀만 무성했다. 인생무상이다.

인근 고보대사의 산소 앞 사당 등롱당은 연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다. 시코쿠섬에 88개의 절을 수십일에 걸쳐 순례하는 코스가 있는데 이곳에 와서 스탬프를 찍어야 순례가 완성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보대사의 사당에 와서 합장하며 그를 기리며 온갖 세속사를 상의한다. 그리고 소원 성취를 기원하며 돈을 바친다. 고보대사는 살아생전 속세의 영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오로지 어리석은 중생의 구제가 유일하며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의 유년시절 일곱 살 때의 일화가 있다. 구카이는 높은 절벽 위에 올라가 큰 서원을 세우고 "저는 불법을 익혀 앞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부처님의 모습을 드러내어 주시고 저에게 그 자격이 없다면 이 몸을 부처님께 바칩니다 "하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자색 구름을 탄 천녀가 나타나 그를 감싸 안으며 "일생성불(살아서 부처가 되리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보대사의 사당으로 올라가려면 작은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모자를 벗으라고 쓰여 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숙연한 자세를 취한다. 지금도 고보대사가 살아서 이 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풍운아 노부나가의 묘는 더욱 초라했다. 한평 남짓한 묘소에 나무로 만든 표지 하나가 쓸쓸하게 서 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반대세력인 천태종 본거지히에이잔에 불을 질러 수 만 명의 승려들을 몰살시켰다.

그런 악연을 가진 그의 묘소가 고야산 불교 성지에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무덤은 더욱 초라하게 보이고 찾는 사람도 없다.

고보대사가 주석한 진언종 본사인 곤고부지와 단조가란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이에야스의 위패를 모신 영대도 둘러보았다.

이에야스의 묘소인 도쇼구는 닛코에 있다. 이곳은 도쇼구가 지어지기 전 그의 손자가 아버지인 히데타다와 함께 모시려고 지은 사당이다. 270년 지속된 에도 막부를 연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후손이 잘되어야 조상이 대접을 받는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인내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에야스다. 세상만사 다 때가 있다며 참고 기다린 이에야스가 3명의 영웅 중 가장 돋보인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죽은 이후에 드러난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린다고 했고 히데요시는 자신의 재능으로 울게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 본 기고문은 한국경제신문(http://www.hankyung.com)에 투고하는 칼럼으로  
계속 연재하여 드립니다. 
 

글쓴이 / 허남정

국제학 박사
(주)에스포유 회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정책자문위원
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전 (재)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이사
저서 「박태준이 답이다(씽크스마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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