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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사회 322] 정완길 박사의 '1616 아리타야끼(有田燒) VS. 2019 비메모리 반도체'
등록일 2019-07-29 글쓴이 관리자 조회 1341

감격사회
감격사회 322호. 발행일 2019.07.29


1616 아리타야끼(有田燒) VS. 2019 비메모리 반도체

정완길
HM&Co 상임고문

최근 일본과 민간차원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일본 큐슈(九州)를 다녀왔다. 큐슈(九州)는 가야 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통로였다. 최근 일본 정부의 반도체 제조 핵심소재의 수출 규제 발표로 한·일간의 무역 분쟁을 넘어 동북아 안보 문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된 7월3일부터 예정된 4일간 큐슈지역 비전투어(동북아 공동체연구재단 주최)에 참여하여 가라츠(唐津), 아리타(有田)를 비롯한 북큐슈 지역을 방문하였다.

여행을 떠나고자 하면 먼저 마음이 설렌다. 행선지가 정해지면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일본국 큐슈만큼 우리에게 설렘을 더하게 하는 고장은 그리 흔치 않다. 부산에서 조류를 따라 닿는 곳은 큐슈 북단에 위치한 가라츠(唐津)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지휘부인 나고야성(名護屋城)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가라츠야끼(唐津燒), 아리타야끼(有田燒) 등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큐슈의 도자기들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의 철기 가공 기술은 가락국으로부터 큐슈 가라츠지역으로 전수되었다고 한다. 조선은 5, 6백 명 규모의 조선통신사를 12차례 파견하여 조선의 발달한 문물을 일본에 전해 주었다. 그 뒤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도공을 강제 이주시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일본 도자기인 아리타야끼를 생산하여 유럽 시장에 진출하였다. 이때 끌려간 도공을 포함한 기술자들의 수는 무려 10여만, 그중에서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에 노예로 팔려 간 사람이 무려 5만여 명 이상일 것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결국 일본 땅에 남게 된 5만여 명의 조선인 후손들은 400여 년 동안 질긴 삶을 이어 오고 있다.

당시 일본의 국내 도자기 산업은 서민들이 사용하던 목기를 질 좋은 도자기로 바꾸는 수요와 최고의 권력자인 사무라이들이 살벌한 전장터에서 겪은 끔찍한 기억들을 해소하고 자신들만의 시간에 차를 즐기기 위한 다기(茶器)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본 역사의 중요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모리 테르모토(毛利輝元)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반기를 들고 절치부심 세력을 키우는 도중에 도자기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조선의 도공을 데려왔다. 이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키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대외적 여건을 보면, 명나라 경덕진(景德津) 청화백자에 매료된 유럽의 귀족들이 중국 도자기의 금수령 조치로 인해 대체품으로 일본산 자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이는 정유재란 때 조선의 도공과 기술자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이유 중 하나이다.

일본 최고의 도자기로 일본 국보로 선정된 하기야끼(萩燒)는 숨 쉬는 도자기(陶磁器)로 인식되어 오래 사용하면 차의 특색에 따라 다기의 색깔이 변한다고 한다. 다기 제조형식에 얽매인 일본 도자기와는 달리 유약의 흐름을 자연 그대로 살린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인이 좋아하는 이도다완의 원형이다. 일본 다도의 아버지인 센노리큐(千利休)는 사카이지역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검소하고 한적한 다도 양식인 ‘와비차’를 정립하였다. 사모하던 조선 여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조선으로 귀국하는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뱃머리에서 차를 함께 마시게 된다. 이때 차를 나눈 일기일회(一期一回)의 순간을 일본 다도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 '일본 도자기의 신(陶祖)'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인 사기장 이삼평(李參平)은 정유재란 때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잡혀 와서 아리타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1616년 일본 최초로 자기를 굽기 위한 흙인 백자석을 아리타 근처의 이즈미야마(泉山)에서 찾아내어 자기를 굽는 데 성공하였다. 지난 4백여 년 동안 일본자기인 아리타야끼를 굽기 위해 백자석을 퍼낸 결과 이즈미야마의 산봉우리 하나가 없어진 평지가 되어 있었다. 현지를 방문해 보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자기를 구울 때는 1,000도 이상의 고열처리 기술은 19세기 들어 무기 제조에 활용한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아리타에서 채색 자기가 생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제무역항 나가사키(長崎)의 존재에 있다. 당시 나가사키에는 중국의 강남(江南) 상인들이 드나들었고, 이들에 의해 최신 도자기 샘플, 기술, 재료가 일본으로 직통으로 유입되었다. 아리타야끼는 조선, 중국을 아우르는 국제적 벤치마킹의 산물이다. 또한 명·청 교체기를 맞아 동중국일대에서 복명운동을 벌이던 정성공(鄭成功) 일파를 진압하기 위해 청조가 강력한 해금령을 발동하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유럽 수출 대체품을 아리타야끼를 주목하게 되었다. 165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하여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하여 급기야는 유럽 도자기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당시 도자기 수출은 개항 초기 극심한 국제수지 불균형으로부터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일본의 도자기 발달을 조선의 인적 자원과 기술을 약탈한 결과로만 보기보다는 원천 기술은 조선에서 왔지만 선진 기술도입과 시장 확대를 통하여 끊임없이 혁신에 매진한 것이 일본 도자기 융성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7월 1일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의 핵심 소재인 포토 리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안전보장상 우호국에 한해 수출허가 신청을 면제하는 ‘백색 국가’ 27개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한편, 한국 반도체 제조업은 69년 삼성전자가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하여 흑백 TV를 생산하면서 시작하였다. 삼성전자는 9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 기업, 2010년 세계 최대의 전자 회사가 되었다. 금년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133조 원을 투자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패스트 팔로워로서의 전방산업인 일본의 소재 부품산업을 활용하여 비교우위 경쟁력을 갖춘 중간제품을 생산 수출함으로써 이뤄낸 성과이지만 세계 1위 기업이 되면 다른 기업전략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현재 양국은 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관계는 최대의 위기 국면에 직면해 있다. 최근에 야기된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금지와 백색 국가 지정제외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둔 선진 우방국임을 상호 인정하고, 글로벌무역체제 하에서의 자유무역 정신을 살려 슬기롭게 풀어나가야겠다. 일본은 400년 전 조선의 도자기를 발전시켜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일본의 근대화와 국부 창출에 크게 기여한 경험이 있다. 현재 한국은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일본의 아리타야끼처럼 한국의 국부창출과 미래 산업의 핵심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지금도 큐슈 비젼투어의 해설을 해주던 일본인 마스부치 게이이치 한일문화교류회장님이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는 버스에서 부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랫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글쓴이 / 정완길

경영학 박사
HM&Co 상임고문
전 한국수출입은행 부행장
전 (재)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원장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전 국무총리실 국제개발 협력 실무위원회 민간위원
전 (주)삼성물산 고문
2017년 매경닷컴 제3회 한국경제를 빛낸 인물 선정(201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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